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의 삶을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어 어느 한 잣대로 해석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복잡다단한 세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1세기는 가히 문화의 시대이므로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키기 위해서 저술된 이 책은 문화 변천을 적극 반영하는, 알려지지 않은 서사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다 풍요로운 주체로 변화시키기 위한 의도를 지닌다. 영국과 미국의 전통 소설과는 사뭇 다른 영어권 서사는 이질적이면서도 주변화된 영어권 주체들의 탈식민 문화적 풍경들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어권 서사가 지닌 탈식민 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데는 21세기 지구촌의 타자의 목소리를 통해 지구지역적 문화와 그것이 목표로 하는 더불어 사는 지구촌 삶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서사(narrative)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문화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서사는 넓은 의미에서 특정한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실제, 혹은 허구적인 인물과 사건을 전달하는 글이나 말을 의미한다. 일련의 사건이 가지는 서사성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지만 이 책에서의 서사는 문학, 역사, 증언 기록물, 기억, 구술 기록물, 자서전, 허구적 문화 평론서 등, 이른바 사실과 허구를 기록하는 것을 다 같이 포함한다. 이 책은 영어권 서사를 통해 단순히 지역연구를 논하기보다 문화의 횡단성에 주목하여 주변성과 타자성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영어권 문학이라는 역사적, 문화적 틀은 이미 1980년 이후 본격화된 탈식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영어권 문학은 크게는 대영제국과 미국의 패권주의에 의해 주변으로 배치된 국민국가와 그들의 식민경험을 포함한다. 이들이 생산한 ‘탈식민’ 문학은 21세기의 문화의 재편성 가운데 ‘영어권’이라는 명칭으로 각 대학의 교과과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이 용해된다고 보이는 오늘날, 영어권 문학을 통해 탈식민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영미의 패권주의에서 보던 시각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 다문화적이며 탈식민적인 영어권 문화의 이해를 향한 확실한 일보를 건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수록된 글은 탈식민 문화를 재현한 서사들을 통해 이들을 통해 중심문화에 대항하는 소수이자 변방에 속한 주체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되게 살피는 내용은 영국과 영국 식민사, 그리고 미국과 미국의 노예사와 이민사를 개입시켜 각기 다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세력의 역사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문화와 전략들이다. 그러한 일환에서 이 글은 주제에 따라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은 특수한 문화를 보여주는 14편의 개별 서사들로 세분화시켜, 대영제국의 피식민으로서의 삶, 탈식민 공간에서도 여전한 문화식민주의, 노예서사, 소수/주변부/이산 등의 문제, 그리고 억압의 층위를 지니는 가부장제를 포함한 젠더 문제를 고찰한다.